임을 위한 행진곡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순서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순서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이 행사에 참석해 악보를 보지 않고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족들과 함께 불렀다. 즉, 제창했다. 이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화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영상]

보수정권은 이 노래가 불편하다

이상한 조짐이 감지된 건 2009년부터다. 취임 첫해 기념식을 찾았던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엔 참석하지 않았다.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본행사에서 제외했다. 식전행사 중 하나로 합창단이 부르게 한 것이다. 그해 10월 행정안전부는 각 기관에 ‘민중의례를 하는 공무원을 징계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민중의례는 1980년대부터 노동단체나 시민단체에서 국민의례 대신 진행하는 사전 의식이다.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대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한다. 공무원노조가 자체 행사에서 하는 민중의례를 문제 삼은 것이다.
같은해 12월1일 정부는 이 노래에 대한 불편한 인식을 공식적으로 드러낸다. 보훈처는 “5·18을 기리는 공식 기념 노래, ‘5월의 노래’를 제정해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각급 학교에서 5·18 기념식을 여는 등 기념식을 확대하려고 하는데 현재 5·18을 기리는 공식 기념 노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5·18 행사에서 공식 추모곡 노릇을 해온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밀어내려는 의도라고 본 관련 단체들이 반발했다. 보훈처는 그해 12월17일 ‘새 5·18 노래’ 제정 계획을 철회했다.
2010년 5월에도 이 노래는 본행사에서 빠졌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식전공연 중 하나로 합창단이 불렀다. 2011년부터는 본 행사에 포함되긴 했다. 하지만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이 상태가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보훈처가 16일 밝힌 ‘제창 불허 방침’은 2011년부터 해온대로 올해 기념식도 치르겠다는 뜻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이 정부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공식 기념식에서 참석자 전원이 함께 부르는 제창 방식으로 불려왔다.
합창과 제창…가깝고도 먼 차이
정부 기념식서도 두쪽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이 열린 2015년 5월18일 오전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앞줄 맨 오른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정의화 국회의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고 있다. 정부 쪽에서 참석한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앞줄 왼쪽 둘째)과 박승춘 보훈처장(앞줄 맨 왼쪽)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광주/ 이정용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정부 기념식서도 두쪽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이 열린 2015년 5월18일 오전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앞줄 맨 오른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정의화 국회의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고 있다. 정부 쪽에서 참석한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앞줄 왼쪽 둘째)과 박승춘 보훈처장(앞줄 맨 왼쪽)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광주/ 이정용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합창은 여러 사람이 화성을 이루어 함께 부르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같은 선율로 부르면 제창이다. 정부의 정의는 이런 사전 뜻과는 조금 다르다. 제창은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것이고, 합창은 ‘합창단이 부를 때 참석자들이 따라 불러도 되고 안 불러도 되는 방식’으로 본다.
두 방식은 현실에서 큰 차이를 낳는다. 제창을 하면 카메라가 주요 참석 인사의 입을 향한다. 합창을 하면 카메라는 합창단을 비춘다. 즉 참석자에게 노래 부를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 전자는 제창, 후자는 합창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전남대 경영학과 3년이던 1982년 4월쯤 작곡했다. 당시 그는 1980년 5월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치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화운동을 하던 10여명과 함께 결혼식 선물로 노래극 테이프를 만들기로 했다. 광주에서 문화운동을 하던 소설가 황석영씨 자택에서 소형 카세트를 놓고 1박 2일 동안 녹음했다. 가수가 꿈이었던 그는 평소 틈틈이 써놓았던 6곡을 조금 바꿔 ‘임을 위한 행진곡’을 4시간 만에 작곡했다. 30분짜리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 음반의 마지막 합창곡으로 넣었다. 가사는 백기완 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12월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씨가 붙였다. 이후 1980년대 운동권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불순한 선동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의 노래!”

최정식 국가보훈처 홍보팀장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임을위한행진곡’ 합창 결정과 관련해 기자들과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최정식 국가보훈처 홍보팀장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임을위한행진곡’ 합창 결정과 관련해 기자들과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보훈처는 16일 보도자료를 내어 “찬성과 반대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정부 입장을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대쪽 의견을 소개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특정단체의 ‘민중의례’에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지 않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고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를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께서 참석하는 정부기념식에서 부르는 것 자체가 부적절함.”, “북한이 1991년 5·18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에 나오는 ‘임’과 ‘새날’의 의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음.”
보훈처가 ‘소개’한 반대쪽 의견에 대해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라디오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보훈처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김일성 찬양곡이 아니냐,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는 양립할 수 없는 노래가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런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보훈처가 직접 유포하고 있다. 김일성 찬양곡으로 의심하면 합창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보훈처가 왜 이런 인식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 20대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
김종률 사무처장은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래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모를까요? 다들 알고 있다고 봅니다. 보수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불순한 선동가가 아니에요. 이 노래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까지 무릅쓴 광주시민에 대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댓글 남기기